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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포럼] 유엔과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원자력은 양날의 칼과 같다. 잘 쓰이면 전력을 생산하는 유용한 수단이지만 잘못 쓰이면 핵무기라는 재앙적 파괴 수단을 만드는 재료가 되기도 한다. 1945년 첫 원자폭탄 사용 직후부터 국가들은 어떻게 하면 평화적 목적의 원자력 이용은 장려하면서도 핵무기의 파괴적 힘을 제한할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1953년 유엔총회 ‘평화를 위한 원자력(Atoms for Peace)’연설에서 핵물질의 군사적 이용을 통제하고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촉진하기 위해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설립할 것을 제안했다. 이후 유엔에서 승인된 ‘IAEA 헌장’이 발효하면서 1957년 7월 IAEA가 유엔 관련 기구로 출범하게 됐다.
IAEA 헌장은 핵무기 확산 ‘통제’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진흥’을 기구의 목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핵확산 ‘통제’는 IAEA의 사찰과 검증, 즉 안전조치를 통해 이뤄지는데, 이러한 IAEA 안전조치 체제는 핵비확산조약(NPT)과 함께 국제 핵비확산 체제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IAEA는 유엔의 가장 중요한 목적인 국제평화와 안전의 유지와 가장 밀접하게 연관된 기구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NPT 당사국은 IAEA와 안전조치 협정을 맺고 모든 핵활동에 대해 IAEA 사찰을 받아야 하는 법적 의무를 갖는다.
IAEA의 이러한 역할 때문에 IAEA는 주로 핵 감시기구(nuclear watchdog)로 불리지만 IAEA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통해 인류 번영에 기여하는 것을 또 하나의 중요한 목적으로 하고 있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라고 하면 주로 원전을 통한 전력생산만을 생각하기 쉽지만 오늘날 원자력 기술은 산업·의료·농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유엔 지속가능 발전목표(SDGs) 달성에 기여하고 있다. IAEA는 개도국에 대한 기술 협력사업 등을 통해 ▷기아 종식과 농업 ▷보건 ▷물과 위생 등 총 9개의 SDG 달성을 지원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방사선 의학은 그간 암 치료에 크게 기여해왔는데, 최근에는 감염병 대응에도 그 역할을 확대하고 있다. IAEA는 지난해 6월 ‘동물원성 감염병 대응 통합행동(ZODIAC)’ 출범을 발표하고, 코로나19 등 감염병 예방과 진단 분야 신기술 개발을 추진 중이다. 우리나라는 올해 100만달러를 기여하는 등 ZODIAC에서 IAEA와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우리가 유엔에서 다자주의 국제질서의 혜택을 토대로 국제사회 협력 논의를 선도하는 국가로 성장한 것처럼 우리는 IAEA를 통해 국제 핵비확산 체제에 적극 동참하는 가운데 6대 원전수출국이자 원자력 기술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1991년 유엔에 가입하기까지 42년의 세월을 기다려야 했지만 IAEA에는 설립 당시부터 초대 이사국(23개국)의 일원으로 참여한 이래 현재도 IAEA에서 주요 원자력국으로서 여러 논의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IAEA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이 강화되면서 우리의 역할과 기여 확대에 대한 국제사회의 요구도 늘어나고 있다. IAEA에서도 핵확산 통제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동시에 성공적으로 달성한 모범사례로서 우리의 역할과 기여를 확대해나가야 할 것이다.
이상현 한국핵정책학회장·세종연구소장